'112신고 묵살', 국가배상 근거 된다 [정구승 변호사]
본문
법조계 "112신고 기록 공개되면서 정치적 책임에서 법적 책임으로 넘어가
"국가배상법상 공무원 고의·과실로 의무 못하면 법령 위반…배상 성립"
국가배상 여부 다툴 때 '어디까지 공무원의 직무로 볼 것인가' 쟁점…법원서 '범위' 판단
정부가 이미 제시한 유족 보상금, 소송서 질 경우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금액서 제외
[데일리안 = 정채영 기자] '이태원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4분 전까지 열 번이 넘는 112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가배상, 국가 책임론이 힘을 얻고 있다. 법조계는 112신고 기록 등을 근거로 국가의 책임이 인정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며 국가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법적 다툼이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1일 경찰이 공개한 이태원 참사 이전 112신고 내역 자료를 보면 지난달 29일 오후 6시 34분부터 참사 발생 4분 전인 오후 10시 11분까지 11차례 참사 발생을 예상할 수 있는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신고자와 경찰의 통화 내용을 보면 "잘못하다 압사당할 것 같다", "압사당할 것 같이 사람이 많다", "핼러윈 압사될 것 같다" 등 '압사'라는 말이 13번이나 등장했지만, 11번의 신고 가운데 4건의 신고에 대해서만 경찰이 출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용산경찰서가 지난달 27일 핼러윈 기간 하루 약 1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의 긴급 대책회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진 반면, 실제 현장배치 경찰 인력은 137명이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정부의 과실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된
국가배상법 제조 제1항은 '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공무원 또는 공무를 위탁받은 사인(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에 따라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을 때에는 이 법에 따라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법조계는 이를 근거로 국가배상이 성립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112신고 기록 공개는 정치적 책임에서 법적 책임으로 넘어가게 한 계기라고 강조했다.
정구승 변호사는 "헌법-법률에 따라 재난을 예방할 의무가 있는 공무원 (이 사건에서는 행안부 또는 경찰)이 고의, 과실로 해당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법령 위반으로 볼 수 있다"며 "그렇다면 국가배상이 성립할 수 있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특히 "6시부터 신고가 있었음에도 조처를 하지 않은 것은 국가배상으로 이어질 소지가 다분하다"고 부연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신고 기록이 공개되기 전에는 정치적 책임 문제였으나 기록이 공개되면서 법적 책임을 논하게 됐다"며 "2일 진행된 서울경찰청 압수수색은 수사를 전제로 한 것이고, 대응을 못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명백한 국가 과실이다"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112라는 건 우리나라 형사 사법 시스템의 근간이기 때문에 초등학생도 아는 것인데 이 시스템의 신뢰가 무너졌다고 보면 된다"며 "그러나 현장 인력이 부족했던 것과 관련해 지구대 경찰들에게 책임을 묻는 건 부당하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국가배상 여부를 다툴 때의 쟁점은 '어디까지 공무원의 직무로 볼 것인가'이다. 법무법인 오킴스 엄태섭 변호사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국가배상책임은 정부 기관 또는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행해진 불법행위로 인해 국민이 손해를 받아야 책임이 인정된다"며 "여기서 직무의 범위가 문제"라고 말했다.
엄 변호사는 "과연 주체 없는 행사에서 경찰이 일상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수준의 치안 질서 유지 인력을 배치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 즉 공무원의 직무였느냐가 쟁점"이라며 "직무의 범위가 무한정 넓어질 수는 없기 때문에 늘 범위가 쟁점이 된다. 최종적으로는 법원에서 이 범위를 판단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 다툼이 법원까지 가게 되면 배상금액이 문제가 되는데, 앞서 정부가 제시한 유족 보상금은 소송에서 질 경우 국가가 배상해야 하는 금액에서 제하게 된다.
정 변호사는 "'국가배상법 제3조의2(공제액)에는 ① 제2조제1항을 적용할 때 피해자가 손해를 입은 동시에 이익을 얻은 경우에는 손해배상액에서 그 이익에 상당하는 금액을 빼야 한다'고 돼 있다"며 "개인적으로 국가배상에 대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차원에서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가 이미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어느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한 것은 유족을 위로하고자 하는 목적도 있는 것 같다"며 "대규모 국가배상으로 연결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정채영 기자 (chaezero@dailian.co.kr)
출처: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119/0002654659?sid=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