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이웃집과 뒤바뀐 전기료…계량기 바꿔 단 한전은 ‘나몰라’ [정구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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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이웃집과 뒤바뀐 전기료를 지불한 한 가정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가정은 지난 8월 무렵 한전에 "실제 사용량에 비해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민원을 넣었고,
이후 한전의 전기기사 실사를 통해 계량기가 잘못 설치됐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법무법인 일로의 정구승 변호사는 “당사자들이 차액을 갖고 서로 왈가왈부 할 게 아니라, 한전이 각각 당사자들과 따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한전이 세금을 더 낸 사람에게 돈을 돌려주고, 세금을 덜 낸 사람에게 돈을 받아내는 게 일반적인 법리”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건물을 지을 때부터 철저한 검사와 관리가 필요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 있는 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데요.
해당 가정은 전기료가 뒤바뀐 것으로 인해 손해를 입은 경우,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당사자 간의 합의뿐만 아니라, 법적인 절차를 통해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으므로 전문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전기료 차액 30만원에 “당사자끼리 합의해라”
전문가 “한전이 오류 책임지는 게 일반적 법리”
“계량기 교체 확인되자 한전 태도 바뀌어” 주장도
“이웃집이랑 전기 계량기가 뒤바뀌어 설치가 됐네요. 이웃분 A씨랑 각자 전기료 정산을 해서 합의를 보시든지 해야겠는데요.”
경상도에 사는 30대 남성 김 모씨는 지난달 초 한국전력(한전) 전기기사로부터 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와 A씨 모두 지난 2005년쯤 신축된 해당 빌라에 비슷한 시기부터 살기 시작한 첫 입주자다. 이 때문에 최악의 경우 18년간 서로가 전기료를 바꿔 냈을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사건은 A씨가 지난 8월 무렵 한전에 “실제 사용량에 비해 전기료가 너무 많이 나온다”고 한전에 민원을 넣으면서 시작됐다. 이후 한전은 전기기사 실사를 통해 계량기가 잘못 설치됐다는 걸 확인했다. 통상적으로 계량기는 한전이 관리를 하긴 하지만 설치 과정에서 생긴 과실은 건물을 지은 시공사 책임이다. A씨는 2005년에 해당 빌라를 지은 시공사를 찾았지만 이미 폐업한 상태였다. 수소문 끝에 연락이 닿은 당시 시공사 사장은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한편 한전은 지난 18년간의 전기요금을 정산한 결과 A씨가 김씨가 내야할 전기료 30만원을 더 낸 걸로 계산이 됐으니, 김씨가 이를 A씨에게 돌려주는 식으로 합의를 보라고 제안했다.
얼핏 보면 아무 문제 없는 듯한 제안이지만 전문가들은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법인 일로의 정구승 변호사는 “당사자들이 차액을 갖고 서로 왈가왈부 할 게 아니라, 한전이 각각 당사자들과 따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한전이 세금을 더 낸 사람에게 돈을 돌려주고, 세금을 덜 낸 사람에게 돈을 받아내는 게 일반적인 법리”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왜 한전은 이런 제안을 했을까. 김씨는 “당사자들끼리 합의를 보면 한전은 복잡한 상황에 얽히는 일 없이 손을 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한전이 당사자들에게 돈을 돌려주고 돌려받는 것보다 당사자들끼리 차액을 정산하는 게 한전 입장에서 이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A씨는 한전 측의 셈법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한전 측 합의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3년 한전이 해당 빌라 계량기를 교체했던 이력이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이전에는 계량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나 2013년 계량기 교체 때 설치가 잘못되면서 전기료가 뒤바뀌기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도 A씨 주장에 동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 전기공학과 교수는 “만약 빌라가 지어진 2005년부터 계량기가 잘못 설치돼 있었다면 2013년에 계량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을 분명히 눈치 챘을 것”이라며 “한전 측 과실로 전기료 청구가 뒤바뀌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라면 김씨와 A씨의 계량기가 바꿔 달린 것은 2005년이 아닌 2013년이며, 잘못은 빌라를 지은 시공사가 아닌 한전에 있는 셈이다.
김씨에 따르면 한전은 이때부터 더 이상 ‘당사자 간 합의’를 언급하지 않았다. 김씨는 “이웃이 계량기 교체 이력을 갖고 따지기 시작하자 한전이 태도를 바꿨다”며 “A씨에게 10년치 부당이득 300만원을 환불해주고, 내게는 3년치 과소청구분 180만원을 내라는 식으로 합의를 보자고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계산하면 김씨와 A씨의 전력 소모량이 비슷해 차액이 30만원 정도지만, 2013년부터 계산할 경우엔 김씨의 전력 소모량이 크게 늘어 김씨가 물어내야 할 돈도 전보다 크게 늘어난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었다.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갑자기 상당량의 돈을 납부해야 할 상황에 처한 김씨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합의를 거절하고 한전과 소송전에 들어가면 변호사 선임 비용이 더 많이 나오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김씨는 “한전이 됐든 건물 시공사가 됐든 계량기 설치를 잘못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시민들만 피해를 보게 되는 꼴”이라며 “억울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그나마 180만원 정도로 넘어간 게 다행이라 생각하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전은 이에 대해 “민원 해결을 위해 다양한 제안을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과소청구분은 당사자가 분할지급하도록 해 부담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최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