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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 비밀유지 하고 싶어도"…자료 유출 불안감 어쩌나 [문건일 변호사]

언론 보도 2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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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기 드라마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는 연방 법원 판사가 주인공 변호사 미키 홀러에게 "경찰의 수색으로 의뢰인들의 사생활이 침해받고 있을 테니 사무실에 빨리 가보라"고 말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사무실에 가보니 사무실 주차장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관련된 단서를 찾기 위해 지역 경찰이 각종 서류를 살피고 있었고, 변호사는 의뢰인 비밀유지권을 언급하며 서류를 내려놓고 나가달라고 말합니다.


경찰은 몇 마디로 설득을 시도하다 일단 손에 든 문서를 두고 돌아갑니다.


주 별로 세부적 내용은 다르지만 변호사와 의뢰인의 기밀유지권(Attorney-Client Privilege)이 법률로써 명확하게 규정된 미국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2016년 롯데그룹의 탈세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의혹과 관련해 확인이 필요한 자료가 법률자문을 맡았던 법무법인 율촌에 있음을 파악하고 처음으로 대형 로펌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2018년에도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의혹의 증거가 변호인에 의해 인멸됐다고 보고 김앤장을 압수수색했고, 이듬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애경산업의 내부 자료를 김앤장이 보유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돼 또 압수수색이 이뤄졌습니다.


크고작은 로펌들 사이에선 수사를 받고 있는 의뢰인이 상담 내용 유출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탈세와 같은 변호사 개인의 비위와 관련한 사건이라면 몰라도 수사 과정에서 증거를 찾으려고 변호사 사무실에서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입니다.


변호사들은 의뢰인들이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변호사에게 사실대로 털어놓기가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문건일 변호사(일로 법률사무소)는 "상담 내용 유출을 우려해 의뢰인과 일반적인 메신저를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자료 통제 측면에서 외부에 서버를 두는 등의 경우가 있는데 결국 소송내용과는 상관없는 부대 비용의 상승이 수임료의 형태로 의뢰인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판사의 영장심사가 있는데..."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하고자 하면 법원의 영장을 받아야 합니다.


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의 영장전담판사가 이를 살펴보고 발부나 기각 결정을 내리는데, 법조계 관계자들은 변호사에 대한 수색의 경우 다른 관문이 필요한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습니다.


법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상 압수수색 영장의 경우 신속성과 기밀성을 요하는 만큼 접수 당일날 발부 여부를 결정해주는 것이 관례입니다.


다만 로펌의 자료를 살펴볼 경우 사건 당사자의 방어권을 침해할 수 있고 별건 수사의 우려가 있는 만큼 압수수색이 가능한 경우를 법률에 규정해놓아야 한다는 겁니다.


영장전담판사로 근무했던 허경호 변호사(법무법인 흰뫼)는 "헌법에 보장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변호사 사무실 장소개념이나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며 "변호사 업무공간에 대한 압수수색은 일반 압수수색 청구 사건과 다르게 별도의 절차를 마련하자는 논의가 학계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욱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 ACP(변호사-의뢰인 기밀유지권)가 명문으로 규정되어있지 않은 이유는 헌법상 너무나 당연해서인데, 수사기관에서 조금씩 이를 침범하다보니 명문으로 규정이 되어야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변호사 압수수색 아예 하지 말라?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는 순간 의뢰인의 자료가 노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모든 상황에서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변호사 개인의 범죄 혐의와 관련해서는 당사자가 머물던 곳을 살펴볼 수 밖에 없고, 또 현행법에도 변호사가 중대한 신체 상해를 방지해야 할 때는 의뢰인의 정보를 넘길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성격의 압수수색이 이뤄지면서 개인이나 기업 의뢰인, 변호사들의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한 대기업 사내변호사는 "혹시나 할 상황에 대비해 모든 법률 자문을 전화통화로만 하고 있다, 문자나 문서를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자문하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윤남근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고려대 로스쿨 특임교수)는 "수사기관에서는 변호사 사무실의 자료가 어떤 건지 모르니까 일단 다 압수를 하게 되는데 거기에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에는 관련 판례가 계속 형성돼 왔고 각 주나 연방에는 이에 관련한 규정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압수된 자료를 수사기관이 열어보기 전에 '특별조사위원(Special Master)'이 가져가 법관에 전달하면, 안에 든 내용을 법관이 심리해 의뢰인의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을 증거에서 제외하는 절차를 두고 있습니다.


한 전관 변호사는 "수사기관 입장에서 수색 범위를 제한하려는 시도 자체가 좋지는 않겠지만 가능 범위를 명확하게 정해주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효율적"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일과 의뢰인의 방어권 모두 타협할 수 없는 가치이지만 법률로써 비밀유지 예외조항 등을 명시해야 의뢰인이 불안감없이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은채 기자 icecream@mbn.co.kr , 이상협 기자 lee.sanghyub@mbn.co.kr



출처: https://www.mbn.co.kr/news/society/4954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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