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 이정근-정영학 녹취록 …스모킹건 될까 [오종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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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퇴직금' 곽상도 무죄…재판부 "재전문 진술 불인정"
법조계 "피고인 동의 하지 않는 한 전문진술, 증거능력 없어"
[더팩트ㅣ정채영 기자] 2021년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이정근 전 더불어민주당 사무부총장 등이 송영길 당시 당 대표 후보의 당선을 위해 국회의원 등에게 돈 봉투를 살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가 민주당 현역 의원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결정적 증거인 이 전 사무부총장의 휴대폰 녹음이 증거로 인정될지 주목된다. 대부분의 내용이 타인의 입을 거쳐 전달된 전문 진술의 '재전문 진술'이기 때문이다.
이 전 부총장은 각종 청탁을 대가로 사업가 박모 씨로부터 10억여 원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옥곤 부장판사)는 지난 13일 이 전 부총장에게 검찰의 구형인 징역 3년보다 높은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은 이 전 부총장의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부총장의 휴대폰에서 3만여 건의 녹음 파일을 확보했다. 이 전 부총장은 2016년부터 7여 년간 자동 녹음 기능을 활용해 모든 전화 통화를 녹음했다. 이 중에는 송 대표의 당선을 위해 돈 봉투를 살포했다는 내용의 녹취 파일이 있었다.
공개된 녹취 파일에서 강래구 한국공공기관감사협회 회장은 "내가 조금 '성만이 형이 준비해 준 거 가지고 인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오 잘했네 잘했어' 그러더라고"라며 송 전 대표에게 들은 내용을 이 전 부총장에게 말하기도 했다. 또 "영길이 형이 그러더라고 그래서 안 그래도 내가 조금 처리해 줬어. 더 열심히 하라고"라는 등 송 대표가 자금 살포에 관여했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이 재전문증거로,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 진술과 재전문 진술은 이해 관계자 즉, 이 전 사무부총장, 송 전 대표, 강 회장 모두가 이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앞서 아들 퇴직금 명목으로 50억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의원의 경우 재판 과정에서 나온 주요 증언들이 재전문 진술이라는 이유로 배척된 바 있다.
당시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에는 "김만배 전 기자는 곽 의원의 아들 ㅇㅇ(곽 전 의원 아들) 아버지는 돈 달라고 하지. ㅇㅇ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 원...그래서 뭘? 아버지가 달라냐?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 그래서 야 인마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 전 기자가 곽 전 의원의 아들을 통해 자금을 전달하려고 했던 것으로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재판부는 "곽 전 의원이 아들 곽 씨에게 말한 내용을 김 씨에게 말하고, 이 말을 정 회계사가 녹음한 재전문 진술"이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법조계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녹취 파일 등의 증거로 송 대표와 이 전 부총장 등을 기소할 수는 있지만 녹음 파일이 증거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형사소송법 제310조의2의 규정에 따르면 전문진술은 증거 능력이 없다. 다만 형사소송법 제316조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원진술자가 사망, 질병, 외국 거주 등 기타 사유로 인해 진술할 수 없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하에는 예외적으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일로 법률사무소 오종훈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은 전문 진술에 대해 예외적으로 증거 능력을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며 "그러나 재전문 진술에는 증거 능력을 인정하는 구정을 두고 있지 않아 피고인이 증거로 동의하지 않는 한 증거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당사자가 진술 내용에 모두 동의하면 증거 능력이 인정된다"며 "당사자는 전원을 의미하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인정하지 않으면 증거능력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전 대표가 돈 봉투를 살포한 것에 대해 유죄를 입증하려면 "보좌관이나 돈 준 사람이 돈을 줬다는 사실, 돈 받은 사람이 받은 사실, 송영길이 지시한 사실까지 입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chaezero@tf.co.kr
출처: https://news.tf.co.kr/read/life/2015193.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