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계단 청소하고, 직접 법정서 춤 추고, 직접 드론 촬영까지…변호사, 이렇게까지 해봤다 [정구승 변호사]
언론 보도
23-08-10
본문
의뢰인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봤다⋯변호사 세 명의 변론기
한 남성이 계단에 쭈구려 앉았다. 정장을 입은 그 남자는 계단 끝이 반짝반짝 광이 날 때까지 걸레질을 했다. 10분도 안 돼 남자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절로 '헉헉' 소리가 났고, 심박수가 분당 122회까지 치솟았다. 정상 심박수(70~80회)의 1.6배에 달하는 수치다. 정장을 입고 걸레를 들고 계단 청소를 한 이 남자의 직업은 바로 변호사였다.
또 다른 변호사는 나이트클럽에서나 출법한 춤을 법정에서 직접 시연했다. 그런가 하면 '건물 벽면에 하자가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하늘에 드론을 띄운 변호사도 있었다.
물론 변호사의 무기는 '말과 글'이다. 의뢰인의 뜻을 법률 언어로 가다듬고, 전달하는 게 이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직감이 왔다. '판사를 설득하기엔 이것만으로 부족하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여줘야만 했다. 그럴 때 변호사들은 이렇게까지 했다.
일의 힘듦을 증명하기 위해⋯계단에서 직접 스마트워치 차고 걸레질
한용현 변호사(법률사무소 해내)는 어떻게 하면 '일의 힘듦'을 증명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는 74세의 청소미화원 할머니가 아파트 계단 청소를 하던 중 심장마비로 그 자리에서 사망한 사건을 맡고 있었다. 출근한 지 보름 만에 일하다 사망했지만, 근로복지공단은 할머니의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지 않은 업무였다"며 단순히 고혈압 등 기존 질환이 악화돼 사망한 것이라고 봤다.
한 변호사는 고민 끝에 '당사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직접 아파트 현장을 찾아가 계단 청소를 해봤다. 그랬더니 특히 '신주'를 닦아내는 게 예상보다 힘들었다. 이번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청소 전후의 맥박을 비교해봤다. 계단을 10칸도 닦지 않았는데, 맥박이 분당 79회에서 122회까지 치솟았다.
이 모습을 7분짜리 동영상으로 담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한용현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신주 작업은 30대 남성인 제가 해도 고된 작업입니다. 70대인 할머니는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결과는 승소였다. 1⋅2심 법원 모두 산재를 인정했다. 법원은 제출된 증거 등으로 볼 때 "신주작업은 육체적 노동 강도가 매우 중한 업무에 해당한다"며 "이 작업이 망인에게 과중한 신체적 부담을 야기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현재 확정됐다.
판사가 '부킹' 이해 못하는 것 같자⋯법정에서 직접 '올가미 댄스' 시연
정구승 변호사(공익법무관)는 법정에서 춤을 췄다. 사실 재판정은 법을 집행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져, 이를 훼손할 수 있는 소란 등을 피우면 법원조직법 위반 등으로 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변호사가 일명 '올가미댄스'를 춘 것이다. 올가미댄스는 팔로 서로의 목을 옭아매고 추는 춤이다. 변호인 의견서에도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나온 '올가미댄스' 사진을 담았다.
정구승 변호사는 이때를 두고 "너무 부끄러웠다"고 회상했다. 그런데도 부끄러움을 감수했던 이유는, 강제추행 혐의를 받은 의뢰인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당시 의뢰인은 나이트클럽에서 한 여성의 몸을 움켜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보자마자 추행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그런데 알고 봤더니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일명 '부킹'을 했던 사이였다. 피해자의 친구조차 "부킹을 따라가서 서로 이야기하고 놀았다"고 진술했다. 이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크게 낮출 수 있는, 유리한 사정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생겼다. 재판장이 '부킹'의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 같았다.
재판장은 증인에게 "부킹을 한 것과 피해자가 피고인을 처음 보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부킹'의 의미를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질문이었다. 이때 정 변호사는 직감했다. 재판장에게 부킹과 의뢰인과 피해자가 함께 춘 춤(올가미 댄스)을 이해시키면 무죄일 것이라고.
정 변호사가 변호인 의견서에서 '부킹'과 '올가미 댄스'를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다. 정 변호사는 춤까지 시연하며 "이런 춤을 처음 보는 사람이랑 어떻게 추냐"고 했고, 결국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정 변호사의 노력으로 남성은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사가 항소했지만, 2심도 무죄였다.
건물 하자 증명하기 위해, 직접 하늘에 '드론' 띄운 변호사
'위잉.'
경기도의 한 호텔 위로 드론이 떠올랐다. 영화, 또는 다큐멘터리 촬영 현장이 아니었다. 정필승 변호사(법무법인 우성)가 띄운 드론이었다. 정 변호사는 드론을 리모컨으로 조종하며 호텔 건물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촬영했다.
건물주가 시공사를 상대로 한 소송이었다. 시공사는 약속했던 공사 기간 안에 완공도 하지 못했고, 오히려 하자가 속출했다. 호텔 측이 지급했던 인테리어 비용만 10억이 훌쩍 넘었다. 대규모 공사였고 발주 금액도 적지 않았지만, 시공사는 적반하장으로 대응했다. 하자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
이 때문에 하나하나 증거로 반박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건물 아래에서 촬영하는 방법으로는, 고층 외부의 하자를 잡아내는 것이 어려웠다. 이때 직접 현장을 찾아간 정 변호사에게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드론이었다.
정 변호사가 직접 드론을 하늘에 띄워 촬영한 결과, 건물 외측 벽에 마무리 작업이 부족한 흔적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 등 증거가 계속 나오자, 시공사의 태도가 달라졌다. "하자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던 시공사는 호텔 측에 먼저 "합의를 원한다"고 제안했다. 증거가 확보돼 있었기 때문에 유리한 고지를 잡은 건 호텔 측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양측의 합의에 따라 조정으로 마무리됐다.
변호사들에게 물어봤다⋯"왜 이렇게까지 했나요?"
변호사들에게 한 가지를 물어봤다. "왜 이렇게까지 했느냐"고. 변호사들은 각자 자신의 이유를 말했다.
"할머니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대리인을 맡은 변호사가 먼저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률사무소 해내 한용현 변호사
"의뢰인이 무죄라고 확신했고, 너무나 억울해 보였습니다."
-공익법무관 정구승 변호사
"드론으로 촬영한 이유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니까요^^"
-법무법인 우성 정필승 변호사
안세연 기자 (sy.ahn@lawtalk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