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장관의 '군 사법 개입' 없도록 명확하게 해야"…박정훈 대령 변호인의 일침 | 정구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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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대령이 2023년 8월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된 지 1년 11개월 만에 순직해병 특검의 항소 취하로 무죄가 확정됨에 따라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귀합니다.
이번 사건에선 'VIP(윤석열 전 대통령) 격노설'에서 출발한 수사 외압 여부가 쟁점이었는데요.
국방부의 "지휘 체계 내 정당한 검토 요청일 뿐 외압은 아니었다"는 주장과 달리 박 대령 측에서는 채해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국방부에 보고했는데,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 결과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또한 박 대령은 군 내 사망사고 처리 절차에 따라 수사 결과를 경찰에 송치했지만, 군검찰은 상부의 '이첩 보류' 지시에 불응한 것이라며 항명죄 혐의를 적용해 기소하여 항명죄 여부 역시 논란이 되었는데요.
박 대령 측 변호인을 담당했던 법무법인 일로 정구승 대표변호사는 단독 인터뷰에서 "지난해 박 대령 변호인단에 합류할 때만 해도, 윤석열 정권의 (권력이) 서슬 퍼렇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런 결과를 받는 날이 다가올까'라는 상상만 했다. 무죄라는 원하던 결과가 나와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인사 불이익이 해소되지 않은 해병대 수사단의 부하 병사들이 있어 (마음이 무겁다).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자들에 대해선 수사가 걸음마 단계인 만큼 마냥 기뻐만 하기엔 힘든 상황이다."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한 정구승 대표변호사는 "정당하지 않은 명령과 우리나라의 국방 권한을 사병화하는 것이 군 기강 해이다. 역사적으로 군 기강이 해이해진 것은 수뇌부가 부패하거나 군을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을 때 발생했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선 처벌이 아닌 보상 혹은 적절한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정의롭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박정훈 대령의 입과방패' 정구승 법무법인 일로 대표변호사 단독 인터뷰
"측면에서 공익신고자 도와줄 수 있는 사회 문화 뒷받침돼야 한다"
"박 대령에게 어떻게 '수사외압'했는지 특검이 집중적으로 수사해야"
박정훈 대령이 해병대 수사단장으로 복귀한다. 2023년 8월 수사단장에서 보직 해임된 지 1년 11개월 만이다. 순직해병 특검의 항소 취하로 무죄가 확정됨에 따른 결과다.
무죄 확정 후 박 대령 변호인단은 "박 대령이 현직 군인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고, 특별검사가 밝혀야 할 순직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 과제는 진행 중"이라며 "박 대령과 변호인단 역시 남은 과제의 해결에 앞으로도 전력을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에선 'VIP(윤석열 전 대통령) 격노설'에서 출발한 수사 외압 여부가 쟁점이었다. 채해병 사망 사건 수사 결과를 국방부에 보고했는데,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수사 결과에서 배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박 대령 측 입장이다. 반면, "지휘 체계 내 정당한 검토 요청일 뿐 외압은 아니었다"는 것이 국방부의 입장이다.
군 형법상 항명죄 적용 여부 역시 논란이 됐다. 박 대령은 군 내 사망사고 처리 절차에 따라 수사 결과를 경찰에 송치했지만, 군검찰은 상부의 '이첩 보류' 지시에 불응한 것이라며 항명죄 혐의를 적용해 기소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11일 박 대령의 입과 방패 역할을 했던 정구승 법무법인 일로 대표변호사로부터 무죄 확정을 받은 소회와 군 사법 체계 문제점, 특검에 대한 당부 등을 들어봤다.

순직해병 특검의 항소 취하로 무죄가 확정된 박정훈 대령(오른쪽)과 그의 법률대리인 정구승 법무법인 일로 대표변호사 ⓒ 연합뉴스
박정훈 대령이 무죄를 받았다.
"지난해 박 대령 변호인단에 합류할 때만 해도, 윤석열 정권의 (권력이) 서슬 퍼렇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런 결과를 받는 날이 다가올까'라는 상상만 했다. 무죄라는 원하던 결과가 나와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인사 불이익이 해소되지 않은 해병대 수사단의 부하 병사들이 있어 (마음이 무겁다). 이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진실을 은폐하려고 했던 자들에 대해선 수사가 걸음마 단계인 만큼 마냥 기뻐만 하기엔 힘든 상황이다."
재판을 준비하고, 공판에 출석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수사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했다. 대놓고 위증하는 증인들의 증언을 반박할 내용을 쉽게 찾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변호인단이 할 수 있는 것은 법원을 통해 사실 조회나 문서 송부 촉탁을 할 수 있는 것밖에 없다. 군검찰이 도리어 진실을 은폐하는 것처럼 공소유지를 했고, 오히려 변호인단이 수사를 하는 느낌이었다."
박 대령과 같은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공익신고자 보호법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호루라기 재단과 같은 시민단체들이 많아져서 공익신고자들을 측면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회 문화가 뒷받침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령을 공익신고자보호법상 공익신고자로 의율하기엔 어려웠던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바뀌지 않는 상황에서 (공익신고자로 지정되어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군 기강 해이'를 우려하며 박 대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정당하지 않은 명령과 우리나라의 국방 권한을 사병화하는 것이 군 기강 해이다. 역사적으로 군 기강이 해이해진 것은 수뇌부가 부패하거나 군을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했을 때 발생했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선 처벌이 아닌 보상 혹은 적절한 명예를 부여하는 것이 대한민국 국군의 기강을 바로잡고 정의롭게 만들 것이다."
박 대령의 '항명죄' 성립 여부에 대해선 아직도 법조계에서 의견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정당한 명령이 아닌 경우엔 항명죄의 명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판례다. 박 대령이 받은 명령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너무 명백한 사안이다. 박진희 국방보좌관이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외압을 하려 했던 메시지가 드러났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논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이같은 주장을 하는 이들도 소수이며,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순직해병특검의 '항소 취하' 예상했나.
"특검의 출범 목적 자체를 고려한다면 항소 취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특검이 증인으로 온 사람들에 대한 증인 신문 기회를 모두 활용한 다음, 무죄 구형을 하거나 '선고 직전에 항소 취하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특검에서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할 부분은 어떤 것이라고 보나.
"채수근 해병의 사망에 대해선 박 대령이 수사를 너무 잘해뒀다.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이제 중요한 것은 수사 외압에 가담한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또,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사 외압을) 했는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현재 밝혀진 것은 전화 통화 내역뿐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돼야 한다. 아울러 대통령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위해 '왜 이렇게까지 (무리하게 사건 마무리를) 했는가'에 대한 소명이 돼야 한다고 본다."
'군 사법개혁' 필요하다고 보는가.
"법무부 장관이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다. 군 사법에도 동일하게 규정이 되어 있는데도 국방부 장관의 (개입이) 가능한 것처럼 여전히 주장하고 있다. 이 부분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군 수사, 사법에 대해선 독립성을 부여해 외압이 있을 때, 진실을 밝히고자 한다면 더 독립적으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한다. 이를 침해하려는 이들에 대한 견제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청산이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통과한 사람들이 하나의 몸처럼 움직여 모든 시스템을 파괴하고 있다.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고친다고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인적 청산과 타 병과나 다른(육사나 사시가 아닌) 출신에 대한 진급 등의 조치가 병행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 대령 사건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됐으면 하는가.
"정당한 명령이 아니라면 이에 저항하더라도 항명이 아니라 명예로운 일이라는 것을 모든 국민에게 각인시켰다고 생각한다. 비단 군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 사회에 표본이 될 만한 사례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박정훈 대령의 항명으로 12·3 내란을 막아낼 수 있었다고 기록될 것이다. 박정훈 대령의 항거로 임성근이 사령관이 되어 해병대를 이끌고 국회로 올 수 없었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군인들도 박정훈 대령의 사례를 생각하며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